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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습 선생이 전하는 ‘금척’과 '옥피리(만파식적)'의 나라
김시습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영해박씨 가문에서는
별도로 ‘금척지(金尺誌)’를 전하였는데,
말 그대로 금으로 만든 자를 만드는 법과 그 사용법에 대하여 기록한 책으로 보여진다.
그 근본(根本)은 곧 천부(天符)의 법(法)에서 나왔다고 하며
그 형상(形象)은 삼태성(三台星)이 늘어 선 것 같으니
머리에는 불 구슬을 물고 네 마디로 된 다섯 치(五寸, 16.5센치)라 하였다.
금척은 능(能)히 천지조화(天地造化)의 근본(根本)을 재고,
능(能)히 이세소장(理勢消長)의 근본(根本)을 알고,
인간만세(人間萬事)에 이르기까지 재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숨구멍, 마음, 목숨을 재면 기사회생(起死回生)한다고 하니,
진실(眞實)로 신비(神秘)한 물건(物件)이라고 할 것이다.
(징심록 추기 8~9장)
* 이세소장(理勢消長) : 세력(勢力)이 소멸(消滅)되는 것과 성장(成長)하는 것의 이치(理致)
역사 기록에 의하면,
혁거세왕이 미천할 때에 신인(神人)이 금척을 주면서 이 금척을 가지고 금사발(금구 金甌)을 바로잡으라고 말했다 하고,
일설에는 금척과 옥피리가 칠보산에서 나와 혁거세왕에게 전해졌다고도 한다.
이 법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고 제상공의 집에만 홀로 전한 것은, 이것이 반드시 파사왕가에 전하였기 때문이요,
또 공의 문중의 후예가 엄중하게 비밀에 부쳐 그것을 감춰 두었기 때문이다.
(징심록 추기 10장)
혁거세왕이 땅 속에 묻어 30개의 언덕을 묻어 감추었다고도 하고,
무열왕때 당 소정방이 금척을 빼앗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와 금척원을 파내기도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파내어 금강산 바위굴에 감추었다는 설도 있다
(징심록 추기 11장)
징심록 추기 12장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신라가 백제를 평정한 후에 당나라 황제가 신라를 침범하고자 출병하였으나,
국경의 해역(海域)에 당도할 때마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번번이 스스로 패하였으니,
이는 기후가 괴상하여 군졸들이 병이 들어 군사력이 스스로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당나라 황제가 이 일을 괴상하게 여기고 사신을 보내 신라에 이상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게 하였다.
사신이 와서 그 일을 시험하니
이상한 기운이 항상 신라 서울의 산천에 떠 있으므로 마침내 군사를 돌렸다고 하니,
이것은 금척에 관계된 설이 아닌가.
기타 신라 때의 허다한 이설이 천부금척에 관계된 것이 많으나
승려의 무리가 자가(自家)에 억지로 끌어다 붙여 설교의 도구로 제공하고 흐리게 하였으니(뒤섞었으니),
그것을 가려낼 여유가 없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 대한제국 금척대훈장 : 등급이 없는 훈장이라 할만큼 중요시 함
→ 누군가 이것을 무궁화대훈장으로 바꾸어 버렸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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